싱스로 뮤지컬 '하데스 타운'
그리스 로마 신화 중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낸 뮤지컬로, 고대 그리스 대신 시대배경을 대공황 시기 미국을 연상시키는 두리뭉실한 설정에 재즈를 가미했다. 공연 기간이 긴 작품인 만큼 공연하면서 조금씩 보완된 서정적이면서도 은유가 가득한 가사와, 재해석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송스루 뮤지컬이기 때문에 음원과 실제 뮤지컬의 공연 시간이 거의 같다.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극을 볼 생각이 있으신 분이라면 과감하게 넘기시길 추천드린다.
1막
이야기의 내레이터인 헤르메스가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코러스 역을 맡은 운명의 세 여신들이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배경과 겨울의 모진 날씨에 대해 노래한다. 자유로운 영혼의 젊은 음악가 오르페우스는 정처 없이 떠도는 여인 에우리디케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한다. 안정된 삶을 원하는 에우리디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두 사람의 가난이 마음에 걸려 망설이지만, 오르페우스의 멜로디가 랄-랄랄랄랄랄라 한 송이의 카네이션을 피워내자 에우리디케는 그가 망가진 세상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함께 노래한다.
헤르메스는 오르페우스가 부른 멜로디가 사실은 옛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서로를 사랑할 때 불렀던 노래임을 알려준다. 오르페우스는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데스는 청혼하면서 그 노래를 불렀고 봄의 여신 페르세포네는 그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지만, 그녀 없이는 새로운 생명이 꽃필 수 없어 1년의 반은 하데스를 떠나 지상을 보살핀다는 내용이었다. 페르세포네가 지상에 도착해 넘치는 흥으로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봄의 여신이 돌아오자 세상은 아주 잠시동안 여유를 되찾는다. 혼자 살아남기에 바빴던 에우리디케는 외로움을 모르고 살아왔지만, 밝고 긍정적인 오르페우스를 보며 이젠 그가 없는 삶으로 돌아가기 싫을 정도로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두 사람은 둘이 영원히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둘이 함께라면 세상이 힘겹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여름이 채 가기 전에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자신의 땅인 하데스타운으로 데리러오자 페르세포네가 불만을 표시한다. 자유분방한 페르세포네는 지하도시를 갑갑해하며 하데스타운의 실상을 노래한다. 하데스타운의 왕이자 석탄과 금, 지하의 모든 광물의 주인인 하데스는 무자비하다. 그에게 예속된 주민들은 배는 굶지 않지만 자아를 잃은 채 끊임없는 노역에 시달린다. 부유한 하데스를 본 에우리디케는 흥미를 가지고, 오르페우스는 겨울이 길고 혹독해진 이유가 관계가 소원해져 사랑의 노래를 잊은 페르세포네와 하데스 부부 때문임을 깨닫는다. 겨울이 깊어지자, 에우리디케는 떨어져 가는 음식과 장작을 걱정하지만, 오르페우스는 사랑의 노래를 복원하는 데 집착한다. 한편 지하에서는, 부를 축적하기 위해 공장과 도시를 끊임없이 확장하는 하데스와 망가지고 있는 지상을 걱정하는 페르세포네가 대립한다.
페르세포네에게 화가 난 하데스는 하데스타운의 부유한 삶을 감사하게 받아들일 새로운 사람을 찾아 나선다. 하데스는 먹을 것을 찾아 폭풍 속을 헤매던 에우리디케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 하데스타운으로 가자고 유혹한다. 망설이는 에우리디케에게 운명의 여신들이 나타나 사랑보다 생존을 먼저 생각하라며 설득한다. 결국 생활고에 굴복한 에우리디케는, 아무리 불러도 자신을 보지 않는 오르페우스를 뒤로한 채 기차에 탑승한다. 마침내 정신을 차린 오르페우스는 뒤늦게 에우리디케를 찾아 헤매지만 헤르메스는 에우리디케가 이미 하데스타운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에우리디케를 다시 찾으려는 오르페우스의 간절함을 본 헤르메스는 오르페우스에게 하데스의 티켓 없이도 하데스타운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길이 험하다는 헤르메스의 말을 듣고도 오르페우스는 지체 없이 출발한다. 헤르메스가 알려준 아주 먼 길을 따라 하데스타운에 도달한 오르페우스가 노래를 부르자,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장벽의 벽돌들조차 감동하여 그에게 길을 내어준다.
한편, 하데스타운에 도착한 에우리디케는 하데스의 선전에 참가하게 된다. 가난한 사람과 도시민들을 구분하는 장벽을 세우고, 끝없는 노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전 문구를 다들 외운듯, 하데스가 선창 하면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이 현대 정치인의 유세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연출이다.
2막
매정하고 난폭한 하데스에게 질린 페르세포네는 술독에 빠져 지내고, 술에 취해 흥을 돋우면서도 하데스타운에 갇힌 자신과 일꾼들의 처지를 비관하며 2막이 시작된다. 에우리디케는 하데스의 계약서에 서명한 후 이제 다시는 지상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름다운 자연과 오르페우스를 그리워하며 에우리디케는 끝없이 후회한다.
그때 머나먼 길을 달려온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부르고, 두 연인은 마침내 상봉한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에게 이제 집에 돌아가자고 말하지만 에우리디케와 운명의 여신들은 에우리디케가 하데스의 계약서에 서명하였으니 그녀는 하데스의 소유이며, 하데스의 동의 없이는 하데스타운에서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때, 하데스에게 오르페우스의 존재가 발각된다. 오르페우스는 지하세계의 왕에게 정면으로 맞서 그의 요구를 말하지만, 하데스는 오르페우스를 무시하며 쫓아내려 한다. 운명의 여신들도 가망이 없는 일은 빨리 포기하라며 오르페우스를 조롱한다.
세상의 냉정함을 깨닫고 절망한 오르페우스는 현실에 비관하는 것이 정답이냐 묻는 노래를 한다. 슬픔과 세상의 법칙을 부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오르페우스의 노래가 하데스타운에 퍼지고, 이를 들은 페르세포네는 직접 하데스에게 찾아가 에우리디케를 놓아달라 부탁하지만, 하데스는 한 명을 놓아주면 하데스타운 전체의 질서가 무너져 내린다며 거절한다. 하데스의 염려대로, 오르페우스에게 동조하는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하데스타운의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노동자들은 만약 에우리디케가 지상으로 탈출한다면 자신들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다. 화가 난 하데스는 여자를 되찾고 자신의 곁에 두는 데에는 노래나 감성 따위가 아니라 물질이 중요한 것이라며 오르페우스를 조롱하고, 그렇게나 대단한 노래 실력을 쫓겨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여보라 명령한다.
처음엔 긴장하지만 이내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잊고 있었던 그들의 사랑 노래를 부른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놀라워하고, 젊은 시절의 하데스가 꽃밭에 있던 페르세포네를 보며 사랑에 빠진 순간을 묘사한다. 오르페우스는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을 잃지 않았냐며 예전의 마음은 어디로 갔냐고 묻고, 노래가 끝나자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서로를 쳐다본다. 그러곤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하데스는 마음이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에우리디케를 풀어주는 데에는 주춤한다. 에우리디케를 풀어주면 규칙에 예외가 생겨 누구나 하데스타운을 나가길 희망할 것이고, 그렇다고 모두 앞에서 감동한 모습을 보여주고도 오르페우스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겨우 화해한 페르세포네를 실망시킬 뿐만 아니라, 옹졸하고 잔인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도 체제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하데스는 놓아는 주지만, 에우리디케가 탈출할 수는 없기를 바라며 오르페우스에게 조건을 건다. 바로 하데스 자신이 벗어나지 못했던, 연인에 대한 집착과 의심의 시험으로, 둘이 지상에 도착하기 전까지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보지 못하게 만들고, 만약에 그녀가 따라오고 있지 않다고 의심해 뒤를 돌아보면 그녀가 영원히 하데스타운에 갇히게 된다는 조건이었다.
하데스가 예상한 대로, 운명의 여신들이 부추기는 의심이 점점 오르페우스의 마음을 조여온다. 오르페우스는 과연 에우리디케가 배곯을 일은 없는 하데스타운을 뒤로하고 가난한 자신을 다시 따라올지, 고되고 긴 길 때문에 중간에 자신을 버리진 않을지 심지어 하데스가 애초에 에우리디케를 보내주지 않고 자신이 혼자 떠나게 만든 게 아닌지 괴로워하다가 결국 지상으로 나가는 출구의 바로 앞에서 뒤를 돌아버리고 만다. 하지만, 오르페우스의 걱정과는 다르게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뒤에 있었다. 이로써 에우리디케는 다시 하데스타운으로 떨어져 영원히 그곳에 남게 된다. 헤르메스는 두 연인의 비극은 오래전 쓰였고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고 못 박으면서도, 언젠가는 그 결말이 바뀌기를 희망하며 다시 부르는 것에 의미가 있음을 상기시키며 극을 마무리한다.
- 오르페우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젊은 음악가. 에우리디케의 연인이다. 노래 밖에 모르는데다가 신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 현실에 어둡다, 때문에 순박하고 어리숙하지만, 마침내 현실에 직면한 순간에도 바람직한 세상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놓지 않는다. 하데스를 따라 지하세계로 간 에우리디케를 되찾기 위해 자신도 하데스타운으로 떠난다.
- 에우리디케
생활력 강한 젊은 여인. 오르페우스의 연인이다. 오르페우스와 달리 운명에 쫓기듯 살아서 차가운 현실을 아주 잘 안다. 평생 자신 한 몸 겨우 지키며 살아왔지만 순박한 오르페우스의 사랑 덕에 조금 가쁘더라도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오르페우스가 노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혼자서 힘겹게 겨울을 준비하지만, 추위와 배고픔에 굴복해 하데스타운으로 넘어간다.
- 하데스
지하 도시 하데스타운의 통치자. 페르세포네의 남편이다. 지하에 묻힌 모든 광물의 주인이라 엄청난 부자이지만 만족하지 않고 일꾼들을 혹사시켜 계속 하데스타운을 개발시킨다. 아내를 위해서라지만 정작 자유분방한 페르세포네는 개발된 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지상을 가꾸기 위해 반년씩 자신을 떠나다 보니, 아내가 아예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구속과 집착이 심하다.
- 페르세포네
봄과 생명의 여신으로 하데스의 아내이다. 그녀가 지상으로 올라가야 생명이 꽃피고 봄이 찾아온다. 이 때문에 1년의 절반(봄, 여름)동안 지상에 있어야 하지만, 하데스의 의처증 때문에 금방 지하로 불려 가고 그녀가 지상에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다 보니 지상에서는 겨울이 비정상적으로 춥고 길어졌다. 이 때문에 하데스에게 불만이 많지만, 말이 안 통하다 보니 하데스타운에 붙잡힌 채 실망감과 지루함을 술로 달래고 있다.
- 헤르메스
이야기의 내레이터. 오르페우스에게 하데스타운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 운명의 세 여신
이야기의 코러스. 머리 속에 떠오르는 걱정, 불안한 생각의 화신으로 인물들을 비극적인 운명으로 이끌어간다.
필자는 생애 첫 뮤지컬 관람을 위의 하데스타운으로 입문했다.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흡사 롤의 '필트오버' 나 '자운'의 분위기이지만, 전체적인 넘버가 재즈, 스윙풍의 곡들이라 귀가 즐거웠던 공연이었다. 필자가 봤던 회차에는 헤르메스 역에 최재림 배우님이 하셨는데, 전체적인 대사나 곡의 가사들이 귀를 찍어 누르는 듯 선명하게 들려와 좋았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 번쯤은 볼만한 공연으로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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